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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32] 베스페이지의 고수 클럽 낫소플레이어스

게시날짜 시간
2019.05.17
베스페이지블랙을 이용하는 골퍼들의 모임인 낫소플레이어스.[사진=낫소플레어어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오른 재미 소설가 이창래 씨는 골프광이다. 일년에 한번 국내 모 대학 계절학기 강의가 있을 때면 꼭 국내 골프장을 지인과 함께 돌았다. 그는 2002년 <골프다이제스트>에 US오픈을 앞두고 기고한 골프 칼럼에서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 공원에서 밤새워 줄 서는 뉴욕의 골퍼들을 소개했었다.

지금은 온라인 접수가 일반적이지만 1990년대까지 이 코스는 선착순 부킹이었고 미국 전역, 혹은 외국에서까지 미국 최고난이도의 블랙 코스에서 라운드 하겠다고 전날부터 대기하는 골프광으로 밤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새벽에 느긋하게 왔다가 긴 줄에 놀라서 허둥지둥 뛰는 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베스페이지 공원 주차장에서는 롱아일랜드는 물론 뉴욕 도심에서까지 차를 몰고 온 골퍼들이 베스페이지의 다섯 개 코스 티타임을 얻겠다고 밤부터 진을 쳤는데 그중에서 가장 짧은 대기줄은 블랙코스였다. 가장 어려운 코스였고 상태도 좋지 않아서 그린은 울퉁불퉁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너무 어려우니 실력자가 아니면 치지 마라'는 경고 안내판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블랙코스에서 플레이를 하던 골퍼들은 어느새 이심전심으로 끼리끼리 모였고 라운드를 마치고 술 마시고 포커로 이어지는 사이가 됐다. 롱아일랜드의 경찰관과 소방관, 자영업자들까지 그들의 면면은 다양했고 어느새 끈끈한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2002년에 US오픈이 처음 열린 이 골프장의 낫소플레이어스 멤버들이 지역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1993년에 글렌 보더릭, 어니 보도, 빌 가이거, 션 맥고완, 폴 조이스, 마이크 오그래디 6명의 모임에서 클럽이 시작됐다. 맥고완의 집에서 회합을 가진 뒤 미국골프협회(USGA)와 메트로폴리탄골프협회에 클럽 결성을 신고했다. 그중에 나이많은 보더릭을 초대 회장으로 하고 맥고완이 사무총장, 어니 보도가 탐험가가 된 ‘더 위너스(the Winners)’클럽이 그들의 모임 이름이었다. 아마도 블랙 코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자긍심에 그런 명칭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클럽 명칭이 바뀌었다. 이들이 살던 곳이 모두 낫소 카운티에 속했고, 이들은 주로 낫소 내기 게임을 했기 때문에 클럽 명칭을 다소 인위적인 위너스에서 ‘낫소플레이어스클럽’으로 고쳤다. 회비로는 1인당 20달러씩 냈고 이후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정규 운영 룰과 의식을 보충해 나갔다.

베스페이지 공원 골프장은 지금부터 83년 전인 1936년에 조셉 버벡이라는 공원 관리인이 저명한 설계가 A.W.틸링허스트의 자문을 받아 설계된 뒤에 개장했다. 버벡이 당시 뉴저지의 어렵기로 악명높은 파인밸리보다 더 어려운 코스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뛰어들었던 만큼 블랙 코스는 극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챔피언티에서 코스 레이팅을 한 결과 76.6이 나왔다. 파71인 이 코스(올해 PGA챔피언십은 파70에 7436야드)에서 프로들이 라운드하면 대체로 5.6타를 더 친다는 의미다.



베스페이지블랙에는 극히 어렵다는 경고 팻말이 붙어 있어 나소플레이어스 클럽은 고수들의 모임이다.

고수들만의 명소이던 이 골프장은 2002년에 처음으로 최대 메이저인 US오픈 코스로 선정되면서 인기가 급등했다. 그해 타이거 우즈가 우승했고 7년 지난 2009년에도 US오픈을 개최해 루카스 글로버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로 바클레이스 대회를 2012년과 2016년 두 번 개최했으며 올해 PGA챔피언십 코스로 돌아온 것이다. 향후에도 이 코스는 2021년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시리즈인 노던트러스트를 열고 2024년에 라이더컵, 2027년에는 다시 노던트러스트를 연다. 21세기에 들어와 이처럼 각광을 받는 건 어렵지만 이 코스가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5개 골프장 모두 공원이 소유한 시립 퍼블릭 코스지만 이곳을 찾는 골퍼들이 자발적으로 클럽을 만든 것이 흥미롭다. 골프장이 메이저 대회를 자주 열면서 코스가 주목을 받게되자 낫소플레이어스클럽도 그에 맞는 품위와 전통을 고민했다. 가입비를 잘 내고 골프장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클럽 로고가 찍힌 옷을 입고 다닌다. 이 골프장을 회원처럼 자주 이용하던 근처 사는 골프광들의 집단이니 골프장도 이 클럽과 상생 관계를 유지한다.

설립 15년주년을 맞은 2008년에 낫소플레이어스는 퍼블릭과 회원제를 통틀어 미국에서 평균 핸디캡이 가장 낮은 클럽으로 우뚝 섰다. 회원 중에 골프 핸디캡이 2.6이하인 사람이 25%에 달한다. 그 의미는 언제라도 US오픈 지역 예선에 나갈 실력을 갖춘 이들이 그만큼 된다는 의미다.



이들의 골프백에는 낫소 플레이어스 명찰이 붙어 있다. 낫소게임을 하는 회원들.
퍼블릭 코스지만 클럽 챔피언도 있다. 제러드 코놀리와 예전에 챔피언이었던 조너선 지터는 이 지역의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도맡는 최고수들이다. 희한한 건 베스페이지는 연습장이 작아서 드라이버 샷 연습을 할 수 없고, 숏게임 시설도 부실하고 연습 그린에는 모형의 홀도 없고 위협적인 칩샷 금지 사인이 붙어 있는데도 쟁쟁한 실력자들이 우글우글 한다는 거다.

현재 클럽에는 110명의 회원이 있고 이들은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여러 골프 단체와 협약을 맺고 있다. 자체 회원의 엄격한 행동 규약을 정해두었다. 2017년에 선출된 운영진에 따르면 마이크 모레리코가 회장이고, 크리스 배트가 부회장이다. 홈페이지(nassauplayers.org)도 운영되고 종종 대회 행사 사진이 올라온다.

한국에도 퍼블릭 골프장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인터넷 회원이 다수 가입된 골프장이 제법 있다. 하지만 한국의 퍼블릭 인터넷 회원은 골프장의 부킹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타의에 의한 조직이다. 반면 베스페이지블랙은 자발적으로 생겨난 고수 골퍼들의 커뮤니티이자 골프 모임이라는 점이 신선하다.

따지고 보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1744년에 조성되었다는 최초의 클럽인 뮤어필드골프클럽은 ‘리스 신사 골퍼회(The Gentlemen Golfers of Leith)’에서 출발했다. 골프장이 아닌 골퍼들의 커뮤니티에서 클럽이 시작한 것이다. 회원제 코스가 아니어도 클럽이 가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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